이름만 자율적 합의일 뿐 사실상 규제

[CEONEWS=김충식 기자]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대중소기업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대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정한 목표 매출이나 이익을 달성하면 대기업 이익 일부를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성과배분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대중소기업이 신제품을 함께 개발해 매출 목표 100억원을 달성하면 미리 맺은 배분 계약에 따라 이익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이라지만 대기업 해외 이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열고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계획’을 논의하고 인센티브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관련 상생협력법 개정안 통과에 협력하기로 했다. 법안 통과에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시범사업에 들어가고 제도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먼저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 세액 공제(10%)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를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고 △도입 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삼고 △대·중소기업의 혁신을 유도한다는 3대 원칙에 부합하도록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의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 추진 움직임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정부가 협력이익공유제를 법제화하면 사실상 강제성을 띌 수밖에 없고, 부작용이 많은 반(反)시장적인 법이라는 것이다. 또 대기업이 이윤 추구를 유인할 동력이 사라질 수 있으며 주주 재산권 침해도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법제화를 통해 기업 간 이익 배분을 규율하는 곳은 없다”며 “법제화로 대기업 이윤을 강제로 배분하면 기업 이윤 추구 동기는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재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6가지다.

① 기여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이익’을 공유 대상으로 삼는다. 즉,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노력으로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났을 경우, 그 이익분의 일부를 협력업체와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익은 금리, 환율, 국내외 시장 상황 등에 다양한 외부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협력사와의 노력을 통해 증가하는 이익을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재계는 걱정한다.

특히 공유되는 이익은 대기업 전체의 이익을 대상으로 삼는다. 대기업의 1차 협력사만 수만개, 수천개다. 협력업체와의 노력이 이익증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해 그에 따라 이익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재계는 주장한다.

물론 원가를 얼마나 줄였느냐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기여도 산정에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 협력사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혁신적인 IC칩 기술을 개발해 공급했고, 그 때문에 제품이 히트를 쳤더라도, 냉장고 외관이나 압축기 등 단가 비중이 큰 협력업체에 비하면 비율을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 법으로 혁신을 유인할 수 있나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가 기업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이익률이 고정돼 있는 협력업체는 굳이 연구개발비를 투입해서 납품단가를 낮춰야 할 유인을 찾지 못한다. 원재료 변동에 따른 적정 마진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단가를 낮추는 게 곧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믿으면 혁신이 일어나고, 이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모두에 좋은 것 아니냐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하지만 재계는 협력이익공유제가 오히려 혁신의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법제화를 통해서 대기업의 이윤을 사실상 강제로 배분할 경우 대기업의 이윤추구 동기는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익은 기업활동의 성과물이다.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익을 공유하는 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법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세금감면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위해 법제화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강제의 의무는 없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③ 주주재산권 침해 논란

협력이익공유제가 주주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주주는 기업활동으로 발생한 수익에 대한 최종적인 청구권자인데, 이익공유제는 주주의 잔여 재산 청구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결산 때 배당으로 돌아가야 할 기업이익의 일부가 납품 중소기업에 돌아간다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외국인 주주의 경우 큰 반발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물론 발생한 이익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것처럼 이익을 나누는 관행이 있지만, 이 경우는 엄연히 목적이 다르다고 재계는 설명한다. 임직원은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데 따른 인세티브를 제공하는 것이지, 주주의 몫을 다른 회사에 나눠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④ 책임은 안지나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면 협력회사가 그 이익을 배분받는 구조지만, 만약 손해가 발생할 경우 협력회사는 손해를 보전해주지는 않는다. 재계는 “위험은 공유하지 않고 대기업에게 책임만 전가하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경영활동의 자기부담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협력업체는 부품을 납품하고 그 댓가로 대급을 지급받지만, 대기업은 제품이 판매되어야 대기를 받는 위험에 노출돼 있고, 생산된 제품의 가치가 떨어질 위험도 상존해 있다”면서 “최종적인 위험부담을 지지 않고 이익을 공유하는 것 역시 대기업의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준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협력 중소기업의 수는 전체 중소기업의 약 20%에 불과하다. 협력이익공유제는 이들 기업에게 유리한 구조다.

특히 골치 아픈 문제는 해외 협력회사의 경우다. 대기업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과도 협력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해외 협력업체를 협력이익공유 대상에서 제외해도 문제고, 국내법에 적용이 안되는 해외기업을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문제다.

해외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협력이익공유제의 부담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기업의 해외 진출이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재계는 강조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기피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⑥ 국제 기준에 맞나

협력업체와 원가 절감을 함께 노력하고, 절감된 부부의 이익을 공유하는 국내외 사례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성과공유제의 사례이지, 협력이익공유제를 법으로 만들어놓는 방식이 아니라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성과공유제는 국내에서 상생협력법 8조에 근조를 두고 대기업과 협력회사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노력해 달성한 성과를 나누는 것이다. 협력이익공유제와 취지가 비슷하다. 하지만 성과공유제는 특정한 성과, 즉 원가가 절감된 부분이나 특정 매출액이 늘어난 부분 등 계산 가능한 부분의 성과를 측정하고 성과물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협력이익공유제처럼 영업활동의 최종 결과물인 대기업의 이익을 직접적인 공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재계 관게자는 “이익공유제를 우리나나라 시행할 경우 국내외 기업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더 나아가 해외기업을 제외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보조금으로 해설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름만 자율적 합의일 뿐 사실상 규제
협력사 재편하면 중소기업 오히려 손해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정부 측은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합의에 따른 이익 공유에 혜택(인센티브)을 주기 위한 법제화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익공유제 법제화가 마치 대기업 이익을 강제로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것이라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며 “도입 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과 상생을 촉진하자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법제화 자체가 또 다른 규제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가 권하는 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것만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말만 ‘자율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기업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은 산업계에 또 다른 부담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대기업의 해외 공장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제조업체가 해외에 공장을 세우거나 증설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역대 최대인 74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은 협력사 자체를 해외 기업으로 바꿀 가능성도 높다. 이미 애플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자국 기업이 아닌 아시아 기업과 협력한다. 한국 대기업도 이미 다국적 기업인 만큼 협력사 시스템을 변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는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혁신 노력을 자극해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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