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글로벌 경기 불안으로 올해 0.6% 성장에 그쳐

[CEONEWS=양지안 기자] 2018년 중남미에서는 2월 쿠바 카스트로 형제의 60년 장기집권을 끝낸 평화적 권력 이양을 시작으로 다양한 정치 이벤트가 개최됐다. 5월에는 베네수엘라 헌법 개정을 통해 독재자의 길로 가게 된 마두로가 재선되고, 7월에는 멕시코 오브라도르가 당선되면서 12월 1일 89년 만에 멕시코에서 좌파 정부가 출범했다. 10월에는 브라질에서 극우주의자인 보우소나루가 당선됨으로써 여러 과격한 변화가 예고됐다.

 전통적으로 중남미에서는 주요국들의 대선이 있는 해에는 부정부패 폭로, 경제 불만 시위 증가 등 사회 혼란이 가중돼 큰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올해는 특히 대외적으로도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가능성이 대두되는 한편,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져 해외자본이 크게 이탈하면서 아르헨티나가 외환위기에 직면하는 등 불안요인이 가중됐다. 중남미 전체로는 예상보다 훨씬 부진한 0.6% 성장이라는 초라한 실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듯하다.

 

브라질, 신정부 과감한 개혁, 해외 자본 재유입 및 투자 기대

브라질의 해묵은 과제인 연금 개혁이 결국 법안 표결에도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면서 그 공은 보우소나루 당선자에게 넘어갔다. 이 문제는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골치 아픈 숙제가 될 것이다. 2003년 이후 좌파 정권이 무상복지 정책, 연금제도 등에 지출을 늘리면서 현재 재정 지출(금융 부문 제외)의 55%가 연금 지급에 쓰이고 있다. 과도한 연금 지출로 오랜 기간 재정적자가 누적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13년 51%에서 2017년 74%까지 높아졌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브라질은 2030년 이전 파산할 수도 있다. 혼란스러웠던 대선도 끝난 만큼 신정부는 2019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줄곧 재정감축을 외쳐 온 보수 여당이나 룰라의 실용주의를 앞세웠던 노동자당 모두 연금개혁이 가장 효과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신용등급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협상을 시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정책들까지 의회가 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브라질 국민들의 지지는 양 극단 후보들에게만 쏠렸을 만큼 사회 분열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극우 가치를 표방하며 새로 집권한 보우소나루가 공기업 민영화, 대미(對美)·대중(對中) 외교 노선과 베네수엘라 난민 문제, 총기 소유와 낙태 문제 등 다양한 이념적 이슈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을 얼마나 봉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브라질, 중국의 대체 수입 수요로 농축산물 수출 늘어

미·중 간 통상 갈등으로 글로벌 교역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은 국가들도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수혜를 본 국가 중 하나가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중국의 대체수입 수요로 대두·과일·닭고기 등 농축산물의 대중 수출이 늘어났다. 대미 수출에서도 철강, 기계·장비, 화물차 수출이 늘어나는 반사효과를 얻었다. 헤알화 가치 하락 외에도 무역 전환 효과가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18년 브라질의 무역수지는 550억 달러 이상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중 간 무역전쟁이 2019년에도 지속되고 글로벌 교역 환경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트럼프 정부가 브라질의 고율 관세를 문제 삼아 미국과의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겠다고 나서 큰 변화가 생겼다. 최근 끝난 NAFTA 재협상에서 안건의 대부분이 당초 미국이 원했던 대로 개정된 것을 보면 다른 중남미 국가라고 해서 특별히 배려할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자동차·전자제품 시장 등에서 무역개방 압력이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올해 가뭄으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 사탕수수 등 농산물 작황이 내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자동차 등 공산품 주요 수출국인 아르헨티나 경기도 일정 부분 회복될 수 있어 전반적인 무역수지는 올해와 유사한 수준을 이어나갈 것 으로 보인다.

 

중남미, 재정·경상 적자 속 투자 침체와 억눌린 소비 해소가 관건

2018년 하반기 중남미 경기 침체를 유발한 열악한 대외 경제여건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나 개별국가별 산업구조와 교역 여건에 따라 그 영향은 달라질 것이다. 먼저 북미 경제에 사실상 통합된 멕시코는 새로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멕시코명: T-MEC)을 추진하면서 제조업 붕괴위기에서 벗어나 한시름을 놓았다. 더욱이 미국의 주도로 비(非)시장경제와 새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독소조항을 명시함에 따라 그동안 미국 시장을 놓고 수출 경쟁을 벌이던 중국을 배척할 수 있게 돼 단기적으로나마 1석2조의 효과를 얻은 것은 긍정적이다. 만약 다급해진 중국이 멕시코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려 할 경우 차이나 머니의 유입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출범하는 오브라도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다소 실험적인 정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 속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라면 치를 떠는 멕시코 국민들에게 정의를 바로 세우고, 낙후된 지역을 재건하며, 소외된 계층에는 복지와 교육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그 성패는 개혁을 위한 재원 마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외연을 확대하며 기업인들과도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에너지 상공정 개발에 민간 투자를 허용한 기존 에너지 정책의 대변화를 예고해 이해관계자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

다. 또 부패 해소를 위한 마약 카르텔 척결 의지도 자칫 2000년대 중반 ‘마약과의 전쟁’ 트라우마를 되살아나게 하는 뇌관이 될 수 있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둘째, 외환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는 2019년 대선에서 또다시 포퓰리즘과 역사적인 대결을 치러야 할 운명에 놓였다. 재정·경상 적자 속에서 외화 유출로 사면초가에 빠진 마크리 정부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있는 악재는 이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과거 갈등을 빚었던 국제통화기금(IMF)과도 무난히 공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서방 금융기관들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마크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대선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다. 전면적인 외환 자유화와 대폭의 재정 감축을 외치며 시작했던 여러 개혁 과제들이 반대론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닥쳐 속도를 늦추면서 한계를 드러냈고, 지금은 방향성도 잃어버렸다. 마크리 정부가 남은 1년 동안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대척점에 있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한번 신뢰를 잃어버린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셋째, 러시아와 중국 외에는 사실상 협력의 통로가 막혀버린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9년에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보이지 않는다. 올해 10만분의 1이라는 기록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IMF는 연말까지 백만%의 물가상승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살인적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베네수엘라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외자유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그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야권의 무력화로 더 강력한 독재자의 길에 들어선 마두로 정권이 축출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서방의 원조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력한 EU-남미공동시장  해체 기로의 지역공동체 개혁 본격화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린 EU-남미공동시장(MERCOSUR)간 무역협정(TA) 협상은 올해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해를 넘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시간에 쫓긴 양측은 궁색하지만 원칙적인 합의라도 하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등 EU의 농축산물 시장과 브라질의 공산품 시장 개방을 두고 협상초기인 20년 전에 비해서도 큰 진전이 없어 극적 타결이 아니고서는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동안 협상 지연의 이유가 브라질 대선 혼란이었던 만큼 내년에도 이 의미없는 협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2019년은 교역 다변화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해가 될 듯하다. MERCOSUR이 과거에는 EU와의 교역을 최우선시했지만 최근 중국과의 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 확대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올 9월 우루과이에서 협상을 이미 시작해 MERCOSUR과 TA 협상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MERCOSUR 입장에서는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이 아시아의 테스트 베드로서 활용도가 있어 운이 좋으면 한국이 최초의 아시아 무역 파트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남미국가연합(UNASUR)은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올 초부터 이미 재정 지원이 끊겨 집행부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4월에는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페루·파라과이 등 우파 정부 6개국이 탈퇴 의사를 밝혀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가고 있다. UNASUR은 과거 브라질의 룰라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주도로 창설됐던 만큼 이제는 그 지향점에 변화를 주지 않고서는 존재 의미가 없어졌다. 또한 2019년 출범하는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신정부가 남미 우파 국가들과 추진하려는 ‘자유주의 동맹’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UNASUR이 존속할 수 있을지는 벌써부터 의문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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