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손으로 일군 '웅진', 재계 32위까지 올려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CEONEWS 윤상천 기자]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CEONEWS가 '대한민국 리딩 TOP CEO'를 선정합니다. 이번 선정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CEO들의 명예와 자존감을 앙양하고 그들의 업적과 노고를 치하하고 CEO PI의 본보기로 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대표적 CEO이며 고령의 나이에도 패기와 활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긍정적 사고와 강한 도전정신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신규 사업을 벌이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집스럽기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가 어려움을 빠졌을 때 사재를 쏟아붓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책임의식이 높다는 평가다.

윤석금 회장은 웅진코웨이로 국내 렌탈시장을 처음 개척했는데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됐다. 윤석금 회장은 렌탈의 원조가 웅진인 만큼 제자리를 찾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매각할 당시 MBK가 코웨이를 다시 매각할 때 재인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받았다. 다만 인수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지를 놓고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현재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코웨이 지분은 26.5%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매수에는 3조 원대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일즈맨의 신화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
‘웅진그룹’ 맨손으로 일궈 재계 32위까지
무리한 사세확장으로 법정관리 신세전락
웅진코웨이 다시 사들이고 재도약 노려

윤석금(1945년 12월 20일) 웅진그룹 회장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강경상업학교(1963년)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경제학과(1969년)를 졸업했다.

세일즈맨의 신화로 불리는 윤 회장은 가난하게 태어나 방황하는 청년기를 보냈지만 27세에 우연히 들어간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영업사원(1971년부터 1980년까지)으로 입사해 영업의 재능을 꽃피웠다. 입사 1년 만에 세계 54개국 영업사원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실적을 냈고 8년 만에 한국지사 판매 상무에 올랐다.

직원 7명과 자본금 7천만 원으로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워 독립(1980년부터 1983년까지)했다. 학습교재와 도서를 만들었는데 특히 이 해 시행된 과외금지법에서 힌트를 얻어 과외강사들의 수업내용을 녹음해 학습테이프로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헤임인터내셔널을 웅진출판으로 사명을 바꾸고 대표(1983년부터 2000년까지)를 맡았다. 웅진출판은 나중에 웅진닷컴으로 회사이름(2000년)이 바뀌었다.

출판사업을 발판삼아 신규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동일산업을 인수(1987년)해 1년 뒤 상호를 웅진인삼으로 바꾸었고, 5년 후에는 웅진식품(1996년)으로 바꿨다. 웅진식품은 고유 음료제품을 출시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한국코웨이(1989년)를 설립하고 웅진그룹 회장(1991년)을 맡았다. 3년 뒤 한국코웨이는 웅진코웨이(1992년)로 사명이 바뀌었다. 특히 정수기회사인 웅진코웨이가 성장의 가장 큰 발판이 됐다. 외환위기 당시 정수기를 창고에 쌓아두느니 빌려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탈 서비스’와 ‘방문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웅진코웨이가 정수기시장에서 독보적 1위에 올라서는 등 승승장구하며 웅진그룹을 재계 순위 32위까지 키워냈다.

웅진에너지(2006년) 설립하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명예박사학위(2006년)를 받았고, 웅진폴리실리콘(2008년) 설립 후 새한을 인수한 뒤 회사이름을 웅진코웨이로 바꿨다. 또 웅진홀딩스(2007년)를 설립하고 3년 뒤 서울저축은행(2010년)을 인수했다. 웅진의 성공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건설과 화학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2년 9월 책임경영을 위해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 올랐다가 채권단의 반대와 악화된 여론으로 10월 물러났다. 이에 따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인 선임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알짜 계열사를 매각(2013년)하고 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이 웅진홀딩스의 회생절차 종결을 결정해 1년 4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분할변제하기로 했던 빚을 6년이나 앞당겨 갚았다. 2016년 6월 법정관리에서 발생한 채무 가운데 98%를 상환해 사실상 조기에 완납했다.

현재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웅진홀딩스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 정상화에 힘쓰고 있다. 또 렌탈사업에 다시 뛰어들어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헤임인터네셔널 설립

윤석금 회장은 1980년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네셔널을 설립했다.

당시 출판업계로선 처음으로 ‘교육 출판물은 여성이 판매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데 착안해 고학력 여성 인력을 전문 판매인으로 육성했다.

헤임인터네셜은 당시 ‘과외 금지법’과 맞물려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과외강사들을 계약을 맺고 ‘헤임고교학습’을 만든 것이다. 이어 ‘어린이 마을 전집’을 만들어 700만 권을 판매하면서 출판업계의 성공신화를 썼다.

△식품사업 진출

1987년 동일산업을 인수하며 식품사업에 진출했다. 동일산업은 1년 뒤 상호가 웅진인삼으로, 1996년에는 웅진식품으로 바뀌었다.

1995년 외국계 탄산음료와 과즙주스가 음료 시장을 점령하던 시절 인삼 달이는 기술을 이용해 ‘가을대추’라는 음료를 시장에 내놓았다. 1996년 ‘아침햇살’ 1999년 ‘초록매실’ 등 잇따라 히트상품을 생산하며 국내 음료시장에서 빅3에 들게 됐다. 탄산음료가 아닌 쌀, 보리차 등 전통적 음료 위주의 히트상품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웅진식품은 1999년 누적적자 450억 원, 부채 700억 원에서 2002년 매출 2600억 원대에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2012년 극동건설 부도에서 비롯된 유동성 위기로 웅진식품은 2013년 9월 한앤컴퍼니에 1150억 원에 매각됐다.

△정수기사업 진출

윤석금 회장

1989년 웅진코웨이의 전신인 한국코웨이를 설립하며 정수기 사업에 진출했다.

웅진코웨이는 외환위기로 설립된 지 불과 8년 만에 외환위기를 맞아 시련을 겪었다. 1997년 웅진코웨이는 330억 원의 매출을 냈지만 영업손실 11억 원을 내며 적자기업이 됐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당시 대당 100만 원을 호가하던 정수기를 사겠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윤석금 회장은 “어차피 팔리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빌려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렌털에 착안했다. 합리적 가격을 앞세워 그동안 높은 가격 때문에 정수기 구입을 주저했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렌탈사업을 시작한지 1년 만에 10만 대의 렌탈 정수기를 팔았다.

렌탈사업은 위기에 빠진 웅진코웨이를 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렌탈사업을 시작한 1998년 코웨이는 영업이익 30억 원을 내며 단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영업이익은 1999년에 64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2012년 극동건설 부도에서 비롯된 웅진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웅진코웨이는 2013년 1월 사모펀드 MBK파트너에 1조2천억 원에 매각됐다. 코웨이는 매각된 지 3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3조 원까지 올랐다.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합의한 '5년 경업금지' 조항에 따라 2018년 1월까지 국내에서 정수기 사업을 펼칠 수 없었다.

△무리한 사업 확대

윤석금 회장은 생활가전과 음료에서 성공한 뒤 전혀 낯선 분야에 도전했다.

2007년 6600억 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하며 건설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건설업계에 불황이 계속되면서 극동건설은 재정난이 가중됐다. 주위에서 극동건설을 포기하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오히려 경영 정상화를 위해 44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추가로 지원했고 결국 회생에 실패했다.

금융계 진출을 목표로 2010년 서울저축은행도 사들였다. 윤석금 회장은 극동건설과 서울저축은행을 사들여 한 때 웅진그룹을 재계서열 31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저축은행도 건설업계 불황에 따른 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의 직격탄을 맞으며 경영난을 겪었다. 윤석금은 서울저축은행에 사재까지 털어 넣으며 인수자금을 포함해 총 2800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성장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태양광사업도 2012년 웅진에너지가 적자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웅진그룹은 결국 2012년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웅진에버스카이 통해 해외 정수기사업

웅진은 경업금지 계약에 따라 국내에서 정수기 렌탈사업을 할 수 없는 만큼 해외에서 정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5년 6월 웅진에버스카이를 만들고 최근2016년 터키에 ‘에버스카이’라는 현지 법인을 설립해 한국형 정수기 렌탈사업을 시작했다.

윤석금 회장은 큰 아들인 윤형덕 웅진투투럽 대표이사를 웅진에버스카이 대표이사에 앉혀 정수기 렌탈사업에 힘을 실었다.

△화장품회사 ‘웅진릴리에뜨’ 설립

윤석금 회장은 2016년 1월 자본금 100억 원을 들여 화장품회사 ‘웅진릴리에뜨’를 설립했고 5월 첫 상품을 출시했다.

웅진릴리에뜨는 ‘온라인 방문판매’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구매자가 물건을 살 때 추천인을 입력하며 추천인에게 보상이 이뤄지는 네트워크마케팅 방식의 구조다. 윤석금은 “온라인판매와 방문판매, 네트워크(다단계)판매, 바이럴마케팅 등 판매에 관한 4가지를 모두 접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금 회장은 1988년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과 함께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해 화장품 방문판매를 통해 화장품업계 2위에 올린 경험이 있는데 같은 방문판매 방식으로 웅진릴리에뜨를 키우겠다는 뜻으로 평가됐다.

웅진릴리에뜨는 첫 판매를 시작한 이후 열흘 만에 1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모집했다.

윤석금 회장은 ‘온라인 방문판매’를 도입해 기존의 화장품 업체들과 차별화했다. 도·소매점을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하고 제품을 구입할 사람을 소개해주면 판매수수료를 지급하는 기존 방문판매 방식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도록 만든 것이다.

△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다시 비상

2016년 6월 웅진그룹의 지주사 웅진은 2022년까지 변제해야 했던 기업회생채무 1470억 원 가운데 1214억 원을 조기 변제했다고 밝혔다.

당시 웅진 측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웅진씽크빅 북클럽 등 신사업 성공으로 웅진이 안정적 그룹으로 바뀌고 있다”며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채권자를 위해 분할 변제할 채무를 일시에 조기변제했다”고 말했다.

웅진그룹은 2012년 9월부터 회생절차를 밟았다. 2014년 2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데 이어 남은 빚을 대부분 청산하며 불운했던 과거의 흔적을 지웠다.

△5년 만에 다시 정수기 렌탈사업 진출

웅진은 2018년 1월2일 정수기 경업금지 조항이 끝나자마자 1월3일 정수기사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다. 당초 웅진은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5년 동안 정수기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발이 묶여 있었는데 이 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한달 뒤인 2018년 2월27일 웅진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비데, 매트리스 등 8종의 제품을 선보이면서 생활가전 렌탈 브랜드 ‘웅진렌탈’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윤석금 회장은 “앞으로 모든 제품을 빌려 쓰는 시대로 변화할 것이고 웅진이 만들어낸 렌탈 시스템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며 “렌탈의 원조답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해 시장을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웅진은 별도 법인을 세우지 않고 웅진의 렌탈사업부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렌탈사업을 시작했다.

3월 영업전문가인 신승철 각자대표를 선임해 렌탈사업을 담당하도록 하고 판매채널 확대와 온라인, 대리점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신 대표는 과거 웅진코웨에서 W영업본부장을 지낸 영업 전문가다. 2016년 화장품 방문판매 전문회사인 ‘웅진릴리에뜨’를 설립했을 당시 첫 대표이사를 지냈을 정도로 윤석금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렌탈은 출범 석 달 만인 2018년 6월 고객계정이 3만 개를 달성하는 등 선전 중이다.

2018년 7월 현재 웅진렌탈의 대리점은 출범 초기 100개에서 200여 개로 늘었다.

사진설명충남 공주시 유구읍 유구마곡사로 136-23에 위치한 코웨이 본사 전경. [사진 제공 = 코웨이]

△차남 윤새봄의 경영 보폭 확대

윤석금 회장의 차남인 윤새봄 전무는 2018년 7월6일 웅진그룹 지주사 웅진의 사업운영 총괄로 선임됐다. 교육과 출판, 생활가전, 레저 등 웅진그룹의 사업운영을 총괄하게 된다.

윤새봄 전무는 2016년부터 웅진씽크빅 대표이사로 일해왔는데 다시 지주사로 복귀했다.

1979년 생으로 미시간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웅진씽크빅 전략기획팀, 웅진케미칼 경영관리팀 등을 거쳐 웅진 기획조정실장, 웅진씽크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 평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저서 '사람의 힘'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대표적 CEO로 통한다. 73세의 고령에도 나이가 무색한 패기와 활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긍정적 사고와 강한 도전정신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웅진출판을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도 밝은 사고방식와 적극적 태도로 일할 것을 당부했다.

영업사원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방문판매와 교육콘텐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의 무기로 내세웠다. 정수기 렌탈업을 성공시킨 것을 기반으로 해 2016년 웅진씽크빅을 통해 콘텐츠렌털을 도입했고 국내 화장품 온라인 방문판매도 도입했다.

신규 사업을 벌이거나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차별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하며 기존 로드샵 기반의 유통형식이 아닌 전통적 직판(신방판)을 도입해 차별화하면서 업계 2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웅진식품을 통해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으로 새로운 전통음료라는 차별화된 신제품을 선보이며 적자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정수기를 판매하는 웅진코웨이가 외환위기로 판매량이 줄어들자 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탈 서비스를 도입해 흑자로 전환한 것도 그가 펼친 차별화 전략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고집스럽기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0년대 말부터 고명 전 건설교통부 장관,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등 3명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룹 경영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입담이 뛰어나며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윤은지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음담패설조차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무형문화재로 바뀌고 만다"며 "사람에 관한 사랑, 세상에 관한 사랑, 그리고 문학에 관한 사랑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내공의 힘일 것이다”며 윤석금을 유머의 달인이라고 평가했다.

회사가 어려움을 빠졌을 때 사재를 쏟아붓고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책임의식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룹 재건의 밑거름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원들에게 영업에 관련한 강연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법정관리 신청 전 웅진홀딩스 보유 지분이 70%가 넘었으나 두 차례 감자를 거친 뒤 6.95%로 줄어든 지분을 2013년 말 두 아들에게 넘겼다.

두 아들이 2세경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윤석금 회장이 존재감을 보이며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금 회장이 지은 웅진그룹의 모토는 '정신문화에서 생활문화까지'다. 출판업을 시작할 당시 국내 어린이들에게 외국도서나 외국도서의 모방물이 아닌 우리 나라 동식물, 풍속, 모듬살이 등을 담아낸 책을 만든 것이나 웅진식품에서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국내 고유의 음료를 출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 비전과 과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웅진코웨이 렌탈 사업을 펼치기 위해 2018년 4월 6일 웅진렌탈 방문판매 출범식을 거행했다.

윤석금 회장은 정수기 등 렌탈사업 재진출을 통해 웅진그룹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웅진렌탈은 출범 석 달 만인 2018년 6월 고객계정이 3만 개를 달성했고 2018년 7월 현재 대리점은 출범 초기 100개에서 200여 개로 늘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렌탈시장은 LG전자와 SK매직 등 대기업들까지 가세해 점유율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2018년 상반기 기준으로 업계 1위인 코웨이의 계정 수가 575만 개, SK매직 125만 개, 청호나이스는 113만 개 수준이다.

윤석금 회장으로서는 국내 렌탈시장을 처음 개척했는데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된 셈이다. 그러나 윤석금은 렌탈의 원조가 웅진인 만큼 제자리를 찾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특히 영업조직 네트워크 측면에서 경쟁력을 자신하고 있다. 현재 렌탈업계의 영업조직 인력 대부분이 웅진코웨이 출신이라는 것이다.

윤석금 회장은 웅진코웨이 시절에 방문판매 조직인 '웅진 코디'를 업계 최초로 만들었다. 웅진렌탈 역시 유사한 렌탈 서비스인력 '케어스타'를 조직해 운영하는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웅진코웨이 출신으로 웅진에 다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금 회장은 코웨이를 다시 인수하겠다는 의지도 굽히지 않고 있다. 웅진그룹은 2012년 경영악화로 MBK파트너스에 코웨이를 매각했는데 이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매각할 당시 MBK가 코웨이를 다시 매각할 때 재인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받았다.

다만 인수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지를 놓고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현재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코웨이 지분은 26.5%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매수에는 3조 원대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웅진은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웅진은 2018년 6월 코웨이 인수 실무 작업을 주도할 자문사를 선정하고 자금을 댈 대주단을 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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