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뿔소와 경제대왕 숙종

엄금희 논설주간

[CEONEWS=엄금희 논설주간] 경제는 한 시대, 한 나라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최고의 주제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 흐름에서 배워야 할 경제대왕은 조선에 없었을까? 정기인의 소설 '경제대왕 숙종' 상하권은 초기자본주의가 도입된 숙종시대의 거시경제 자료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지금까지 경제에 관한 이런 대하 역사소설은 없었다. "백성들이 항상 쌀밥과 소고기뭇국을 먹을 수 있게 하라." 숙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 조선을 근대화와 중상주의 정책으로 경제대국으로 일궈낸 경제대왕이다. 특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장옥정, 장희빈은 숙종 뒤에서 무역업으로 칠패시장에서 장사를 한 경제인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최근 한국경제는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Grey Rhino', 우리 말로 회색 코뿔소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관심 없이 그냥 넘기는 위험요인을 나타낸다. 덩치가 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코뿔소의 움직임을 느껴도 두려움 때문에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해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500년 역사에서 경제에 관심을 가진 왕은 없었을까? 먼저 세종대왕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이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실패한다. 세종이 즉위 후 26년간 뚝심으로 밀어붙였던 화폐 도입 정책은 실패한다. 세종은 당시 화폐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세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닥나무 종이로 만든 지폐인 '저화'를 도입한다. 저화는 자급자족의 폐쇄 경제체제에서 지폐를 찍어봤자 금방 가치를 잃고 휴지조각이 되었다. 하지만 세종의 의지로 밀어붙인다.

뚝심의 세종은 저화 정책이 실패하자 저화를 4년 만에 폐지하고 구리로 만든 주화를 다시 유통하는 화폐정책을 단행한다. 기존 세금을 모두 주화로 낼 것을 강제했다. 시장에서 좀체 통용되지 않는 주화도 결국 실패한다. 세종 28년 다시 저화를 재사용 하였으나 세종이 죽은 뒤 화폐정책은 조선에서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세종의 화폐경제정책 실패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정책이라 해도 민간에서, 특히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정착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이후 논의조차 못하게 된 조선의 화폐 도입은 200년 뒤인 숙종 때 이뤄진다. 숙종은 "나라는 산업 조직이며 경제가 전부"라고 생각한 왕이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은 거시경제 운용으로 조선의 근대화로 국토개발과 농촌근대화, 과학기술 개발의 시대를 연다. 대동법과 상평통보를 통용시켜 경제개발에도 큰 공이 있다. 화폐가 유통되며 저축으로 투자와 교환, 손익계산, 대부 및 외상거래가 가능해진다. 또한 노동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양반과 상놈이라는 인신의 지배 예속이라는 중세적 신분제도도 서서히 변화한다. 민간부문이 살아나고 공공부문도 숨쉬기 시작한다. 공사의 구분 및 기업과 가계의 분리가 이뤄지며 성장 동력이 생긴다. 자본과 교통, 통신, 항만 등 산업 인프라와 학교, 병원 등 생활 인프라가 제로인 상태에서 경제적 기반을 쌓은 것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동안 장희빈에 휘둘린 무능력한 왕이라고 알려진 숙종은 결코 여색에 휘둘려 나라를 내팽개친 왕이 아니었다. 조선의 어느 왕보다 더욱 경제가 무엇인지 안 왕이었다. 숙종에 대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장옥정 역시 시대를 앞서나간 여장부였다.

숙종과 장옥정의 경제대국을 향한 노론과의 분투와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대를 앞서나간 경제정책들을 읽으며 숙종의 위대한 업적이 폄훼되고 영조와 정조만 부각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의 역대 왕 가운데 숙종만이 수차례 환국을 통해 노론 정권을 교체하고 대신을 죽이는 등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독점하면서 숙종을 요녀 장희빈에 빠져 국사를 팽개친 악의적 야담을 퍼뜨린다. 장옥정을 조선의 3대 악녀나 요화로 비하한 것도 노론의 음모다. 그녀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에서 왕비까지 오를 만큼 특출한 능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숙종은 시장원리를 제대로 인식한 왕이다. "과인은 현재의 재정으로는 자주국방과 국토개발, 농촌근대화, 과학기술발전을 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 조세의 절반 이상이 새고 있소. 조세를 제대로 거두는 방법은 화폐제도를 시행하여 조세를 금납화해서 아전의 재량권을 막는 길뿐입니다. 모든 전세와 공물들에 대해 상평통보로 가치를 환산해주기 바라오. 가령, 쌀 1석은 상평통보 400문(文, 은 1냥), 한산모시 1필은 쌀 4석이니 상평통보로 1,600문(은 4냥)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전으로 받으면 부정은 사라질 것이오." 쌀 1석은 은 1냥이고 은 1냥은 400문이었다.

숙종은 말한다. "화폐가 유통되면 자본이 저축되고 투자도 살아날 것이오. 나라의 소득은 투자와 소비의 합과 같다고 알고 있소. 국가에서 투자한 1냥은 백성들 소득에서 1냥 이상을 낳고 이것은 다시 1냥 이상의 가치가 있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게 될 것이오."

장옥정은 숨을 깊이 쉰 후 정신을 가다듬고 숙종에게 아뢴다. "이곳에 들르는 아랍 상인들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화약 성능 개발 경쟁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화약이 강해야 사거리가 긴 탄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철의 강도에 의해 칼의 무기 등급이 정해졌지만 지금은 총탄의 사거리로 무기 등급이 결정됩니다. 조총이 활을 이긴 것은 사거리가 몇 배 긴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아군에게 공포를 일으켜 전의를 상실케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승도 포탄의 사거리와 신속한 발사에 비결이 있었습니다. 또한 전술에서 수학적 계산을 잘하셨습니다."

숙종이 묻는다. "어떻게 그리했다는 것인가?" 옥정은 "판옥선을 개조해 대형 화포를 탑재해서 포탄의 사거리를 늘였습니다. 그리고 포신의 각도와 화약의 양으로 사거리를 조절해 발사했습니다. 또한 사거리별로 정확한 화약 양을 기름먹인 종이에 미리 담아놓고 적선의 거리에 따라 빨리 사격하셨습니다." 참으로 천지개벽이다.

그러나 역사는 장옥정이 죽음으로써 조선은 자주독립을 포기하고 청국의 압력에 굴복한다. 장옥정의 꿈은 남자들에 의해 깨졌다. 조선은 강소대국의 기회를 버렸다. 최석정은 루이텐과 알크마르를 숨겼다. 그리고 보유한 폭탄 120발도 숨긴다.

지금까지 알려진 장희빈에 대한 혹평은 '인현왕후전'과 노론이 쓴 책 '수문록'과 인현왕후 오라비 민진원이 책임 편집한 '숙종실록',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로 악의적으로 기록했다. 한 예로 '수문록'은 훌륭한 노론의 사림 학자들이 썼다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사실과 달리 기록하고 있다.

"장희빈은 사약을 먹지 않기 위해 발악했고, 아들의 하초를 잡아당겨 고자로 만드는 패악을 부리다 억지로 사약이 부어졌다. 드디어 장녀가 죽으니 하늘의 천벌을 받아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궐내를 진동하는지라 즉시 궁밖에 내다 버렸다."

이는 노론이 그만큼 장희빈을 증오하고 미워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시장원리가 몸에 배어서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이익이 보이면 저돌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조정과 궁궐 내에 적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그녀를 당할 수 없는 상대방들이 모함한 것이다. 장옥정이 죽음으로써 조선은 노론의 천국이 된다.

숙종 시대를 경제적 관점에서 읽는다. 조선 숙종은 최고의 경제 지도자이자, 경제대왕이다. 숙종은 조선 역사상 세종대왕을 능가하는 위대한 경제 대통령이다. 숙종은 일벌레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소고기국을 먹을 수 있을까 하고 평생 고민한 백성을 사랑한 왕이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씨이오뉴스-CEONEWS-시이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