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전통의 샘표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 것

[CEONEWS=오영주 기자]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CEONEWS가 '대한민국 리딩 TOP CEO'를 선정합니다. 이번 선정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CEO들의 명예와 자존감을 앙양하고 그들의 업적과 노고를 치하하고 CEO PI의 본보기로 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샘표식품 3세 오너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은 조부인 박규회 샘표 창업주, 부친인 박승복 회장에 이어 지난 1997년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 경영해 온 오너 3세다. 박 대표는 취임 이후 대표 상품인 간장에서 영역을 확대해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하고, 1500개 한식 요리 레시피를 정리하는 등 '집밥 솔루션'을 정립하겠다는 목표를 이어나가고 있다. 박 대표는 기업인이면서 음식문화운동가로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 생애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는 1950년 서울출생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4인조 록밴드 ‘레이니 포’의 베이스를 맡기도 할 만큼 예술적 재능도 뛰어나다. 미국에서 철학 강의를 하다 부친의 권유로 1997년 가업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22년간 샘표식품을 이끌어오고 있다.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박사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건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공학도 출신에게 철학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플라톤의 두꺼운 책 [플라톤의 대화]는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한 문장에 꽂혔다”고 했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벼락이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듯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 ‘겸손’이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담았다고 한다. 박 대표는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자세가 곧 겸손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경영을 해 왔다.

故 박규회 회장이 “내 가족이 먹을 수 없는 건 만들지 않는다”를 경영 신조로 삼았다면, 손자인 박 대표는 “건강에 좋은 제품만 생산하겠다”는 뜻의 이 말을 시대에 맞게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뜻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돈을 많이 버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정말 잘하면 이익도 많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을 잘하고 회사 구성원들이 행복하다면 회사도 성장할 것이며,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회사의 규모가 작아 못할 때가 꽤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대표는 구성원들이 행복해지려면 회사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 성장 방향을 세우다
그는 1990년 기획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자공학과 철학만 아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기에 회사경영을 위해서 샘표식품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먼저, 직원들이 하는 일을 유심히 관찰했다. 샘표식품의 제품은 물론 경쟁 업체 등 시장 상황도 분석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하는 일이 샘표식품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잘 맞아떨어지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방향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직원들과 의논하면서 고쳐나갔다. 

그가 목표로 한 회사 성장 방향은 두 가지였다. 첫째, R&D·마케팅 중심의 회사로 성장하겠다. 둘째,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제품을 판매하겠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경영목표가 됐다.

샘표는 1946년 ‘삼시장유양조장’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래 국내 대표 식품으로 우뚝 섰다. 이는 집집마다 장을 직접 담가 먹던 시절에 공장에서 생산한 장을 판매하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우직하게 나아간 결과다. 1954년 ‘샘표’라는 이름의 간장을 출시한 이후 국내 최고(最古) 상표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지녔던 것이다.

박 대표는 매년 매출의 약 5%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 전통의 발효와 장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장 프로젝트’를 2010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맛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우리맛 연구’도 병행한다. 세계 최초 요리과학 연구소인 스페인 알리시아연구소와 협업해 전통 장을 각국 유명 셰프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계자는 샘표가 R&D에 많이 투자하는 또 다른 이유를 회사에 깊게 뿌리 내린 ‘모험의 DNA’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샘표는 최초의 캔커피, 최초의 CM송, 최초의 네온사인 광고, 최초의 PET용기 도입 등 ‘최초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샘표는 지금 남아 있는 국내 상표 중 가장 오래됐다.

△한식과 전통 장류 세계화 노력
박 대표가 취임 후 20년간 매달린 또 하나. 한식과 전통 장류의 세계화였다. 7개 한국 소스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음식에 접목해 150개 요리법을 개발할 정도의 열정을 보였다. 제조 중심이던 샘표가 그의 취임 후 연구개발(R&D) 중심 회사로 탈바꿈하면서 2013년 오송에 통합 연구소인 ‘우리맛발효연구중심’을 세웠다. 한식 세계화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샘표는 전통 장을 수십 년 연구했으며, 우리 비전은 ‘전통 한식의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한인시장이 아니라 현지 프리미엄 미식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세계 최초의 요리과학연구소인 스페인 알리시아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는 “유명 셰프들에게 한국 전통 장과 요리 에센스 연두를 알렸고, 반응이 엄청났다. ‘마법의 물’로 통했다. ‘한식이야말로 채식을 가장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된장 푸딩, 곰취 모히토 등이 탄생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글로벌 프리미엄 미식시장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내수시장의 한계를 해외진출로 타개
사실 박진선 대표가 이렇게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샘표식품은 매출의 58.5%가 장류에 집중돼 있다. 그 외 요리에센스 연두, 육포, 한식 양념 등 장류 외식품에서 41.5%의 매출을 얻고 있다.

샘표식품은 2011년 매출 2000억 원대를 돌파한 후 지난 해 매출액이 2758억원이다. 최근까지 매출증가율은 연간 5%대에서 정체돼 있다.

최근 국내 식생활 트렌드로 보자면,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 대체식품) 시장의 증가로 인해 조미료, 장류의 소비가 정체되는 상황이다. 샘표식품의 대표 제품군이 바로 조미류와 장류라는 것을 생각하면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장류 매출과 장류 외 제품의 매출 중 각각 93%, 85%를 내수에 의존하는 샘표식품의 수장인 박 대표가 해외 진출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샘표식품의 해외진출 현황을 보면, 미국과 중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올 상반기 북미 매출은 80억 원으로 지난해 69억 원보다 늘었다. 중국과 동북아 지역은 지난해 동기 대비 3억 원 증가한 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상반기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증가하기는 했지만, 샘표의 해외 진출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포 외 현지인까지 소비자층을 확보해야만 해외에서도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효과학 연구소를 지었던 혜안
지금도 박 대표는 “2013년 경기 오송에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연구소를 세웠을 때. 주변인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다”고 술회하곤 한다. 매출 2000억원짜리 간장 회사가 300억원을 들여 연구소를 짓는다고 했으니 당시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대표의 눈은 미래를 보고 있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통합 연구소 없이는 연구원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계속 자기 분야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며, “20~30년 전만 해도 아무거나 만들어 팔면 팔렸지만 지금은 1등만 살아남는다. 세상에 없던 게 절실하다. 요리 에센스 연두는 그래서 나왔다”고 말했다.

△연두의 핵심 경쟁력

박 대표가 야심차게 개발한 ‘연두’는 100% 천연 콩 발효액으로 요리의 풍미를 살려주는 기능을 강조한다. 2010년 당시 다시다와 각종 천연조미료가 양분하고 있던 조미료시장에 순수 발효액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초기엔 조미료는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반응이 차갑기도 했지만, 2012년 ‘요리 에센스’라는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를 잡으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16억원이던 연매출이 2012년 43억원, 지난해 180억원으로 뛰었습니다. 연두는 장 특유의 향이나 강한 맛이 사라져 거의 모든 종류의 요리에 쓸 수 있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한식 세계화에 적합하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만의 것을 개발하겠다는 정신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박 대표이지만 의외로 신제품 출시 간격은 더딘 편이다. 실적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면 ‘미투 제품’밖에 안 나온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R&D에 투자하는 이유는  ‘우리만의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연두도 갑자기 나온 게 아니며, 2001년 세계 최초로 콩만을 발효해 전통 한식 간장의 대량 생산화에 성공, 맑은 조선간장을 출시한 게 씨앗이 됐다. 기존 양조간장은 콩과 소맥을 원료로 하지만 한식 간장은 콩만 발효해 만드는 신기술을 적용했다. 이를 업그레이드하면서 탄생한 것이 ‘연두’다. 샘표식품에 입사하고 10년 만에 첫 결과물을 내놓는 연구원도 있을 정도로 속도가 아닌 과정을 중히 여기는 박 대표다.

△노사분규 없는 회사
샘표식품은 노사분규가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3대에 걸쳐 내려온 샘표 특유의 기업문화를 설명한다. 할아버지는 ‘직원은 가족이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철학을 지니고 1950년대에 주부사원을 고용해 방문판매를 통한 명성을 쌓을 수 있었고, 1960년대엔 비정규직 사원이 없었으며, 1970년대엔 회사의 재무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후 5시 퇴근을 지킨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독특한 면접문화
박 대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젓가락 면접, 요리 면접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적용한다. 그 이유로 “기업은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지만 원칙과 기본이 몸에 밴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 젓가락질은 어려서 부모에게 배우는 것이다.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떨어지진 않는다. 연습할 시간을 주고 노력하는 사람을 뽑는다”며, “요리 면접도 재료를 주고 4~5명이 팀을 이뤄 요리하는 과정을 실무진이 지켜본다. 단체로 요리를 하다 보면 각각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샘표가 원하는 인재상을 면접에서부터 드러내는 것이다.

△박 대표가 그리는 샘표의 미래
박 대표는 “샘표는 20년 전, 10년 전과 지금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앞으로 10년 뒤에 전혀 다른 기업이 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꿈꾸는대로라면 샘표는 10년 뒤엔 바이오 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장의 발효는 확장성이 뛰어나 미생물이나 줄기세포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먹거리를 생성해낼 수 있다. 참치를 잡지 않고도 줄기세포를 배양해 키워내고, 미생물을 키워 계란 흰자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발효는 무궁무진한 변신이 가능한 분야라는 그의 생각에서 샘표가 나아가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CEONEWS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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